SIGHT SEEING
  • 전동성당
    사적 제288호. 건축면적 약 624 m2. 천주교 신자의 순교지이기도 한 이 곳에 1889년 프랑스의 파리 외방전교회(外邦傳敎會) 소속 보드네(한자명 尹沙物) 신부가 성당 부지를 매입하고, 1908년 V.L.프와넬(한자명 朴道行) 신부의 설계로 건물이 완공되었다. 호남지방의 서양식 근대건축물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것의 하나로, 평지의 성당으로는 대구 계산동(桂山洞) 성당과 쌍벽을 이룬다. 화강석을 기단(基壇)으로 사용한 붉은벽돌 건물로서, 본당과 측랑(側廊)의 평면 구성에다 내부는 둥근 천장으로 되어 있다. 중앙의 종탑을 중심으로 양쪽에 배치된 작은 종탑들은 조화로운 입체감을 창출, 건물의 상승감을 더해 준다. 종머리는 로마네스크의 주조(主調)에 비잔틴풍(風)이 가미되어 있어 건물 본체와 잘 어울린다. 1988년 화재로 건물 일부가 소실되었다.
  • 경기전
    1991년 1월 9일 사적 제339호로 지정되었다. 1410년(태종 11)에 임금은 전주, 경주, 평양에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하고 제사하는 전각을 짓고 어용전(御容殿)이라 하였다. 경기전은 왕조의 발상지라 여기는 전주에 세운 전각으로, 세종 때 붙인 이름이다. 건물은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1614년(광해군6)에 중건하였다. 보호면적은 49,590㎡이다.경기전의 경역은 정전(正殿)과 조경묘(肇慶廟)로 나뉜다. 정전(보물 1578)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보물 931)을 봉안한 곳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이다. 지대석(地臺石)과 면석(面石) 및 갑석(甲石)을 갖춘 기단 위에 세운 다포계(多包系) 형식의 맞배집으로, 그 전면 가운데에는 1칸 규모의 기단을 돌출시켜 쌓고 그 위에 첨각(添閣)을 세워 배례청을 시설했다. 마치 능침(陵寢)의 정자각(丁字閣)과 같은 형상이다. 이 첨각 기단의 3면에 벽돌을 깐 보도를 연결하였다.
  • 전주한옥마을
    1977년 한옥마을 보존지구로 지정된 뒤 전통한옥지구·전통문화지역·전통문화구역·전통문화특구 등으로 불리다가, 2002년 10월 '전주시 공공시설 등의 명칭 제정위원회'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전주시 완산구 교동(校洞)·풍남동(豊南洞) 일대 7만 6,320평에 700여 채의 전통 한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마을은 일제강점기 때 성곽을 헐고 도로를 뚫은 뒤 일본 상인들이 성 안으로 들어오자, 이에 대한 반발로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현재까지 당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 전주향교
    1992년 12월 23일 사적 제379호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1만 357㎡이다. 본래 1410년(태종 10) 완산구 풍남동(豊南洞)에 있는 경기전(慶基殿) 부근에 지었으나 1603년(선조 36) 관찰사 장만(張晩)이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대성전(大成殿) ·명륜당 등 16동의 건물이 있으며, 전국 향교 중 유일하게 공자 ·맹자 ·증자 ·안자의 아버지 위패를 봉안한 계성사(啓聖祠)가 있고, 대성전 ·동무(東?) ·서무(西?)에 51선현의 위패가 봉안되었다. 또 장판각(藏板閣)에는 《주자대전》 《성리대전》 《사기평림(史記評林)》 등 9,600여 점의 목판이 소장되어 있다.
  • 남천교
    전주시 교동 한옥마을과 서학동을 잇는 남천교, 그리고 남천교 위에 세워진 팔작지붕을 한 청연루가 ‘전주 남천교 명품화사업’을 통하여 한옥마을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남천교 주변의 미관 향상과 한옥마을의 인프라 확충을 위해 인근 도로, 하천, 건물을 단계적으로 정비하고 있다. 남천교(길이 82.5m, 폭 25m)는 이 자리에 있던 옛 홍예교의 이미지를 살려 아치형 교량 구조를 하고 있다. 다리 위에 세워진 청연루(晴烟樓)는 전주 8경 중 하나인 한벽청연(寒碧晴煙)인 한벽당(寒碧堂, 누각)과 대칭적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청연루에 올라 앉아 동쪽을 바라보면 멀리 기린봉 자락에 자리 잡은 동고사가 아스라이 보인다.